[화려한 휴가] 김지훈 감독



영화는, 개인의 트라우마로 이야기가 전개되거나 혹은 은유나 비유가 아닌, 본격적으로 80년 광주에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광주 항쟁 혹은 학살에 대한 이미지는, 대학시절 읽던 임철우씨의 단편 소설들에서 묘사된,  광주의 이미지를 머리속에 강박증처럼 새긴 채 어찌할 바를 모르며 살아가는 소시민의 모습에서 처음 느끼기 시작했었다. 그리고 이어서 나오는 여러 분야-<모래시계>, <꽃잎>, <박하사탕>등등-에서 그려진 광주의 모습들은 여전히 본격적인 모습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마침내 과거의 부채를 털어버리듯이 임철우씨가 써 내려갔던 장편 소설 <봄날>로 그날을 세세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봄날>을 읽으면서 몸서리 쳤던 기억들과 분노, 슬픔들은 느낌이 많이 바랬지만, 아직도 그 날들을 보는 시선들이 완전한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요즈음의 모습들을 보면, 소설을 읽던 당시 맘속에 가지고 있던 적의가 다시 살아나려 한다. 

미루고 미루다 드디어 영화를 보게 되었다.  <화려한 휴가>를 그동안 보지 않았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봄날>의 경험으로 인해 영화 자체에 큰 흥미를 가지지 않고 있었다. 영화 자체가 그렇게 재미있어 보이지 않기도 했지만 우선 나를 끌어당길 그 소재자체는 소설에서 충분히 봤으니 말이다. 두번째 이유는 사람들이 불평하는 과도한 신파와 어설픈 코미디였다. 소재 자체를 상업적인 틀에서 영화화하는 것은 반대할 것이 없지만 그 방식이 맘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기존에 통했을 거라고 믿는 구태의연한 영화적 장치를 그대로 써먹으면서 소재를 우려먹는다는 생각이 드니 영화 자체가 그닥 끌리지 않았던 것이다. 

영화를 두 번에 나눠서 봤다. 진압 작전이 시작되기 전, 여러 인물들이 소개되고 민우와 신애가 감정을 쌓아가는 영화 삼분의 일은 좀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도저히 안 보였다. 그냥 어떤 인물들이 있는지, 그리고 민우와 신애는 그냥 좋아하는 사이라는 것을 심심하게 그냥 죽 나열하는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가령 민우가 신애를 자전거에 태워주려다 동생이 속여서 타고 결국은 넘어지게 되는 장면은 두 사람의 연애감정과 형제의 돈독함을 코미디의 모습으로 보여주려 했지만 세 가지 모두 겉도는 모습이었다. 그에 비해 요즈음의 텔레비전 드라마들이 오히려 더 흡입력이 있어 보인다. 진압군이 투입되는 시점부터 다시 보기 시작했는데 진압군의 모습과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익숙한 이미지들이었지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장면들은 어떠한 영화적 구성이나 아이디어가 필요하지 않을 터이다. 그 장면에 대한 충실한 묘사자체가 영화 자체를 이끌테니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도청 사수 장면. 화면에는 비장감이 흘렀고 등장 인물들의 사연을 읊으면서, 하나 하나 죽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내가 그들에게 연민을 느끼고 슬퍼하는 이유는 오로지 그 동안 보았던 소설과 영화들에서 느꼈던 감정을 그 장면에 이입했기 때문이다. 그 장면, 장면들은 그냥 클리셰들의 나열이었다. 

감독을 위한 변명을 하자면, 이 영화 자체가 큰 돈을 들이면서 80년 광주의 모습을 상업화하는 기획 단계에서 여러 제작자들의 입김이 들어 갔거나 혹은 제작 조건자체가 적당한 신파 와 비장미의 묘사에 중점을 두었을 거란 추측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제작자들은, 그러한 안일한 영화적 장치들의 나열에도 불구하고 나 같이 광주에 대한 빚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 각각의 감수성을 기꺼이 내어주리라는 계산도 했을 거란 생각도 든다.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준 결혼식 단체 사진 장면은 처음 봤을 때는 주체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상 장면의 생뚱맞음때문에 허탈했었다. 하지만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웃고 있을 때 드레스를 입은 채 우울하게 입을 다물고 있는 신애의 모습을 발견 했을 때 그 장면이 신애의 헛된 바램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영화 중반에 함께 찍은 단체 사진과 짝을 이루는 이 장면은 감독이 영화를 더 잘 찍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겨주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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