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운전사] 장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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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항쟁 또는 비극을 다룬 영화를 생각하면 <화려한 휴가>와 <꽃잎>이 금방 떠오른다.  하나는 흥행영화의 공식을 지루하게 따르고, 다른 하나는 "강간/방관자"의 이미지로 광주의 비극을 은유한다. 두 영화는 대중성과 작품성, 흔한 잣대의 두 끝점에 각각 서 있다. <택시운전사>는 중간 어딘가에 있다. 흥얼대던 노래가 차츰 울먹임으로 바뀌다가 이정표 아래 갈랫길에서 결국 택시기사가 울음보를 터뜨리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때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영화 전개에 아쉬움이 많았다고 투덜거리는게 이해가 되지 않았더랬다. 정부측 요원들이 택시기사 일행을 따라다니는 점이 겉돌게 느껴졌지만 작은 흠 정도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후반부에 비장한 최후와 대비시키기 위해, 별 고민없이 코미디 클리셰를 남발하며 등장인물들을 서로 엮었던 전반부 장면들 때문에 <화려한 휴가>를 싫어했다. 광주항쟁을 개인의 연애사에 쾌활하게 이어붙인 김현석 감독의 <스카우트> 는 무척 좋아하니 가벼운 코미디가 거슬린 건 아니었다. 광주에 대한 부채의식을 안고, 광주항쟁 관련 문화공연에 기꺼이 시간과 돈을 내어줄 시민들을 타겟으로 얄팍하게 기획된 영화가 아닐까, 하는 의심들때문이었다. <해운대>의 쓰나미가 단지 공수부대 학살로 바뀌었을 뿐. 그렇기에 <택시운전사> 후반부에 잠깐 액션영화로 장르가 바뀔 때 흥이 다 깨졌다. 감독 (또는 제작자)은 이야기의 덩치를 부풀리고 싶어했던 것 같다. 영화 앞 부분으로는 영화표 값어치를 못 하니 서비스로 끼워넣은 서스펜스로 관객들 입가심이라도 하란걸까. 교양과학책에 수식 하나 들어갈 때마다 독자가 반으로 준다는 반농담 공식처럼, 흥행용 클리셰를 하나 집어넣을 때마다 관람객이 100만씩 늘어난다는 통계라도 있나보다. 소시민이,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역사적 비극의 현장에 동참하게 된다는 이야기는 참 흥미롭다. 영화의 모티브도 거기서 출발했을 테고, ...

[너의 이름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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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전작인 <별의 목소리>와 <초속 5cm>에서는 두 남녀가 근원을 알 수 없는 애절함을 간직한 채 서로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상대방을 애타게 찾기만 하다가 아련함을 간직한 채 깨어나던 백일몽이 생각난다. 감독은 그러한 감성을 풍부한 빛 묘사를 통해 보여주었더랬다. 섬세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만이 잡아낼 수 있는 세밀한 감정표현까지 말이다. 비슷한 느낌을 신경숙의 초기작들을 읽으면서 느꼈더랬다. 가령, 벙어리 형제 이야기인 <새야 새야>에서 주인공이 '살아가는 것을 슬퍼하는' 감수성을 어떻게 산골에 살면서 얻게 됐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단지, 사랑하는 여인을 지키고 싶은 애절한 마음을 형제간에 주고받는 수화를 통해 조용하지만 절절하게 보여준다. 신경숙의 초기작들이 감수성 넘치는 독백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는 비판이 과거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도 감독의 전작들에도 비슷한 딱지가 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너의 이름은>은 이 부분, 즉 감수성이 영화의 주된 이야기가 돼버리는 상황을 벗어나려는 감독의 고민이 들어간 작품인 듯 싶다. 남여 주인공의 이야기를 엇갈려 진행시키다 혜성 낙하 장면까지 비선형적인 시간으로 장면을 배치하면서 전작에서 느끼기 힘든 이야기의 힘을 비로소 보여주게 되고, 감독이 늘 담고싶었던 애절함을 이야기에 제대로 녹여내는 데 성공하였다. 두 사람을 엮어주는 "무스비" 설정은 여전히 정이 안가지만 영화 감상에 크게 방해를 하지는 않았다. <초속 5cm>에서 두 연인이 서로를 그리워하지만 결국 만나지는 못한 마지막 장면들은 안타까움을 안겨주지만, <너의 이름은>에서는 이 망각의 벽을 허물면서 끝을 맺는다. 흔히 반복되는 뻔한 운명적 만남 이야기는 이정도로 어마어마한 사연을 붙여줘야 매력적이 된다.

[아이 캔 스피크(I Can Speak)] 김현석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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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전작들(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광식이 동생, 광태, 스카우트 , 시라노 연애 조작단)을 떠올려 보면 앞 부분은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적절한 유머를 섞어가며 설명하고, 후반부에 영화의 큰 주제를 배치했던 걸로 기억한다. 에스에프 장르로 잠깐 외도한 것을 제외하면 다루는 소재와 주제가 다름에도 꽤 비슷한 형식으로 영화가 진행된다. 여느 상업영화라고 다를게 없겠지만, 김현석 감독은 캐릭터마다 신선한 유머들을 입혀주고 감독의 묘사에 수긍하도록 연출을 하는 부분이 큰 차이점이겠다. [아이 캔 스피크]는 전작들보다 많이 차분했다. [스카우트]에서 봤던 몸 개그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영화의 전반부는 인물 간에 주고받는 대화를 보여주며 흘러간다. 때문에 전반부는 감독의 전작과 비교하면 굉장히 정적이다. 자칫하면 시트콤 수준에 머무를 수도 있었는데 팔천 건의 민원 폭탄을 퍼부어댄 옥분 할머니의 기행, 영화 첫 장면과 재개발 이슈를 엮으면서 관객들의 궁금증을 영화 중반까지 잘 붙들어 둔다. 자칫하면 지루해질텐데 왜 이렇게 영화가 차분했을까, 하는 궁금증은 영화 중반에 옥분 할머니의 사연이 밝혀지면서 풀리게 된다. 까불거리는 연출이 도저히 후반부와 어울리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절제를 하느라 감독이 꽤 고심했을 듯 싶다. 옥분 할머니의 사연은 영화 홍보 기사에 많이 알려진 듯 한데 관람전에 정보를 찾아볼 기회가 없던 터라 영화에서 관객들이 주인공의 과거를 깨닫게 되는 순간에 격한 연민을 느끼게 됐다. 호들갑 떨지 않고 차분하게 연출했지만 감정의 폭은 크다. (영화 줄거리 포함) 옥분 할머니가 과거에 겪은 일을 주변에 알릴 결심을 하게 되면서 영화 후반부는 수십 년 시간대와 한국 밖을 벗어나는 공간으로 확장된다.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고통을 간직한 한 소시민의 이야기는 [스카우트]에서 이미 다루었지만 광주민주화항쟁과 위안부에 엮인 범죄 관련자의 국적만큼이나, 두 영화가 개인의 비극을 다루는 방식이 다르다. 관련자 단죄 및 관련 법 제정...

[무한대를 본 남자 The man who knew infinity] Mathew Brown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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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특히 정수론 분야에서 일하면 당연히 봐야하지 않나 하는 의무감 같은 것이 있어서, SKT옥수수에 영화가 무료로 올라온 후에도 영 땡기지 않아 감상을 미루는 마음이 숙제를 미루는 학생 심정이었다. 영화는 두 가지 큰 주제를 다루고 있다. 즉 인도에 남은 아내와의 관계, 그리고 직관과 증명 사이의 충돌. 그런데 둘 다 밋밋하다. 수학자의 꼼꼼한 고증만으로는 훌륭한 수학 영화가 나올 수 없는 것은 당연할텐데 영화는 거기에만 힘을 쏟은 느낌. 직관과 증명 사이의 불화에 대해서 충분히 고민하면 좋은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텐데 참 안이하게 처리한 듯 싶다. 의도는 그렇지 않았겠지만, 영화에서는 증명을, 논문 출판과 영예를 얻기 위해 타협 또는 극복해야하는 수학적 전통 정도로 취급하고 있는 듯 보인다. 리틀우드가 소수에 대한 라마누잔의 연구에 틀린 점을 발견 하고 하디가 직관의 위험에 대해 라마누잔에게 경고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을 더 확장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갈등은, 험한 영국 생활과 소식없는 아내에 대한 실망으로 지친 라마누잔이 하디의 무관심을 원망하고 연구실을 뛰쳐나가는 것으로 진행되고 만다. 그 마저도 영화의 다른 부분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 하는 에피소드 정도로 머무르니 영화 전체가 밋밋할 수 밖에..... 일반 관람객이라면 천재가 써 내려가는 수식들과 다른 수학자들과의 "대결" 정도가 흥미를 끄는 관람 포인트가 될 것 같다. 내 경우에는, 자주 보던 것 이외의 것을 기대했지만 눈에 띄는 영화의 장점을 찾지 못했다. 그랬다, 버트란드 러셀을 영화에서 볼 수 있었다는 점이 내겐 제일 큰 놀라움이었으니.....

[미주알고주알] 권혁웅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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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전 쯤 분당에 있는 알라딘 중고책방을 들러서 아무 정보도 없이 책을 고르는 행복한 고민을 오랜만에 했더랬다. 시간들여서 이것 저것 검색하고 책을 꺼내 살펴보고 하다가 문득 생각난 권혁웅 작가의 책들을 찾아보았다. 시집 몇 권이랑 책 <미주알고주알>이 뜬다. '미주알고주알'은 '아주 사소한 것까지 속속들이' 라는 뜻인데, 미주알은 창자의 끝부분을 일컫는 말이란다. 고주알에 대한 설명은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개중 정설은 없는 것 같다. 독특한 책이다. 책의 부제인 '시인의 몸 감성사전'을 처음 봤을 때는 베르베르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 떠올랐다. <백과사전>과 비슷하게 저자가 나름대로 몸에 대해 고민했던 글들을 모아놓은 것 아닐까 했는데 내용은 예상을 벗어났다. 몸의 각 부분, 손, 다리, 얼굴, 눈, 코 등에 대한 글들을 각각 잡다, 만지다, 찾아가다, 웃다, 울다, 보다, 맡다 등과 같은 제목으로 장을 나누었는데 한 페이지에 한 주제씩, 짧게는 한 문장에서 길게는 두세 문단의 글들을 배치하였다. 예를 들면, '찾아가다 : 다리, 발'이라고 이름 붙은 장에서 한 쪽(48쪽)은 다음과 같다. 먼지의 길 마음은 늘 비포장이었다. 왜 그리 불퉁거려야만 했을까. 이런식이다. 같은 장(55쪽)에서 약간 긴 글을 옮겨 보면, 미노타우로스 택시 운전사에게는 어떤 미로도 약도이고, 버스 운전사에게는 어떤 미로도 도돌이표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는 어떤 미로도 불가지론이다. 내 길의 끝에서, 나를 기다리는, 해명되지 않은 그 사람이라니! 495쪽짜리 책에 한쪽짜리 쪽글들이 계속 이어지니 사전이라고 이름붙인게 어색하지 않다. 처음 글 몇 개를 읽어보다 선문답같은 내용을 접하고 나니 왜 저자가 책을 내게 됐는지 이해가 되었다. 시를 쓰면서 떠오른 여러 시상들 중 제대로 된 작품으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묵혀두고 있던 것들을 몸과 연...

[컨택트(Arrival)] 드니 빌뇌브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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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줄거리 포함) 1. 인생의 이야기가 숙명(fate)으로 <컨택트(arrival)>는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와 전개가 다르다. 우선 영화에는, 소설에 없는 갈등과 해결이 있다. 그리고 언어의 영향(샤피어 워프 가설, 영화 대사에서 직접 언급, 소설에는 언급 없음)으로 목적론적 사고를 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지만, 루이즈가 미래를 기억(!)하는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인 물리학적 원칙-페르마의 최소원리-은 영화에서는 언급되지 않는다. 목적론적 사고 또는 정해진 미래를 현재와 함께 인지하는 상태(미래-기억)를, 페르마의 최소원리에서 유추해 내는 과정이 소설의 묘미 중 하나인데 애초부터 영화에서 기대하기는 어렵지 싶었다. 변분원리를 영화에서 주절주절 설명하다보면 흐름이 깨지고 관객들은 몰입하기가 어려울테니 말이다. 물리학 이야기가 빠진 덕분에 뱅크스 박사의 전공은 숫자 1/12을 발견하는 데 기여하는 장면에서만 쓰이게 된다. 때문에 물리학자를 등장시키는 당위성은 많이 약해졌다. 대신에 영화는 루이즈가 겪는 자신과 딸의 인생에 대한 미래-기억을 어떻게 끌어 안고 선택을 하게 되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래-기억 장면들은 감성적인 측면을 강조하기 위해 현재 장면과는 다른 분위기로 촬영되었는데, 테렌스 맬릭 감독의 최근작 <To the wonder>, < Tree of Life>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즉, 대사와 상황설명용 화면이 아니라 이미지와 음악들이 이야기를 끌고 간다. 그리고 영화를 위한 창작곡이 아니라 삽입곡으로 쓰인 <On the nature of daylight> (Max Richter작곡) 의 역할이 무척 크다. 영화가 선택한 방향때문에 마지막 루이즈의 선택(또는 남편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소설과는 다른 느낌을 주게 된다. 우선 소설에서는 선택을 하는 행위가 정해진 미래 혹은 시공간의 궤적을 차분히 쫓아가는 이미지라면(3절 참...

[오아시스] 끝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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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부산스러운(어수선한) 이미지이다. <오아시스> 끝장면에서 햇볕에 반짝이는 먼지들은 확실히 공주의 마음을 보여준다. 곧 나온다고 잘 지내라는 동주의 연락을 맘 속에서 되새기며 청소를 하는 공주의 서툰 빗질은 빛나는 먼지들과 함께 뿌듯함을 품고 있다. 자취하던 시절, 잘 빤 물걸레로 단칸방 바닥을 휘적휘적 열심히 훔친 후 얼굴을 대고 누워있으면 화사한 봄기운에 물기가 말라가던 비닐장판의 촉감이 참 기분좋았더랬다. 그 만족감이 공주의 것과 비슷하지 싶다. 만족감, 기다림, 희망 이 세가지가 한 화면에 어우러져 있으니 장면 속 먼지들은 공주 맘 속에서 들끓고 있는 기쁨에 대한 은유가 된다. 글을 읽다가 오아시스 끝장면에 대한 기억과 정반대되는 구절(시의 6절)을 찾게되니 서로 비교해봐야겠다는 생각에 동영상을 편집해서 업로드하는 수고를 했다. - 서울시 신림동 산77 聖 金福禮의 하루 - 권혁웅 1 부엌 지붕 새로 스며든 빗물이 판자를 휘어놓았다 식기들이 비스듬히 걸터앉아 아침 햇살에 이빠진 웃음을 웃는다 옹기종기 모여앉아 食口를 계산하는 그릇들도 이 집 식솔들이다 2 지나는 곳마다 고개턱이어서 길들도 한숨을 부려놓는 곳, 그 길을 091021-2023527 김복례 할머니가 오른다 마을의 수도꼭지들이 할머니를 따라 쇳물을 쿨럭거린다 소리의 音階를 밟으며 할머니 길을 오르신다 ........중략......... 5 바람만바람만 따라오던 가등의 행렬, 어깨 으쓱이며 돌아가고 건너편 산등성이 불빛들도 까무룩 조는 초여름 저녘, 김복례 할머니 형광등 값을 아끼려 일찍 자리에 든다 벌써 눕느냐고 칭얼대며 은초롱꽃들이 등을 켜들고 슬레이트 처마 아래를 들여다본다 6 야채나 생선차도 이곳엔 들르지 않는다 해서 이곳엔 기다림이 없다 그저 마른 방구들 풀썩이며 노는 먼지들 뿐이다 그 위로 햇살이 부서진다 하늘에 제일 가까운 곳에 세워진 빛의 고딕 성당 서울시 신림동 산77번지, 거기에 김복례 할머니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