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캔 스피크(I Can Speak)] 김현석 감독



감독의 전작들(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광식이 동생, 광태, 스카우트, 시라노 연애 조작단)을 떠올려 보면 앞 부분은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적절한 유머를 섞어가며 설명하고, 후반부에 영화의 큰 주제를 배치했던 걸로 기억한다. 에스에프 장르로 잠깐 외도한 것을 제외하면 다루는 소재와 주제가 다름에도 꽤 비슷한 형식으로 영화가 진행된다. 여느 상업영화라고 다를게 없겠지만, 김현석 감독은 캐릭터마다 신선한 유머들을 입혀주고 감독의 묘사에 수긍하도록 연출을 하는 부분이 큰 차이점이겠다.

[아이 캔 스피크]는 전작들보다 많이 차분했다. [스카우트]에서 봤던 몸 개그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영화의 전반부는 인물 간에 주고받는 대화를 보여주며 흘러간다. 때문에 전반부는 감독의 전작과 비교하면 굉장히 정적이다. 자칫하면 시트콤 수준에 머무를 수도 있었는데 팔천 건의 민원 폭탄을 퍼부어댄 옥분 할머니의 기행, 영화 첫 장면과 재개발 이슈를 엮으면서 관객들의 궁금증을 영화 중반까지 잘 붙들어 둔다.

자칫하면 지루해질텐데 왜 이렇게 영화가 차분했을까, 하는 궁금증은 영화 중반에 옥분 할머니의 사연이 밝혀지면서 풀리게 된다. 까불거리는 연출이 도저히 후반부와 어울리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절제를 하느라 감독이 꽤 고심했을 듯 싶다. 옥분 할머니의 사연은 영화 홍보 기사에 많이 알려진 듯 한데 관람전에 정보를 찾아볼 기회가 없던 터라 영화에서 관객들이 주인공의 과거를 깨닫게 되는 순간에 격한 연민을 느끼게 됐다. 호들갑 떨지 않고 차분하게 연출했지만 감정의 폭은 크다.

(영화 줄거리 포함)


옥분 할머니가 과거에 겪은 일을 주변에 알릴 결심을 하게 되면서 영화 후반부는 수십 년 시간대와 한국 밖을 벗어나는 공간으로 확장된다.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고통을 간직한 한 소시민의 이야기는 [스카우트]에서 이미 다루었지만 광주민주화항쟁과 위안부에 엮인 범죄 관련자의 국적만큼이나, 두 영화가 개인의 비극을 다루는 방식이 다르다. 관련자 단죄 및 관련 법 제정을 통해 광주의 비극을 어느 정도 정리했기 때문에 [스카우트]에서 광주항쟁을 후일담 형식에 유머를 섞어 묘사했더라도 평범한 주인공이 소스라치면서 떠올린 과거에 대한 회한을 광주에 대한 미안함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유를 관객들이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성노예 할머니에 대한 적절한 사죄를 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에 더해 국민 정서가 예민한 때에 관람객들이 수긍할 수 있도록 슬랩스틱 유머를 배치하기가 꽤 어려웠을 터이다.

후반부는 전형적이다. 베프 정심 할머니 대신에 미국 국회에서 위안부 결의안 심사를 위해 증언하게되면서 영어 공부를 왜 하고 싶어했는 지, 아이 캔 스피크 제목에 두 개의 의미가 겹쳐있음을 관객들이 깨닫는 부분, 시장 상인들과 절절한 대화를 통해 화해하는 부분, 청문회장 분위기에 압도된 할머니 입을 뗄 수 있게 한국에서 날아와 도와주는 민재 장면 등이 그랬다.

전형적이라고 후반부가 지루하지는 않았다. 다르게 묘사하기 힘들 듯한, 의회 연설 장면같은 부분들에서 감독의 내공으로 지루함을 잘 피해간 듯 싶다. 예쁘게 진열된 기성품같은 장면들이 감독의 전작들과 다른 부분인 듯 싶다. 전작들에서는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꼼꼼히 연출하니 에피소드들과 유머, 내용 전개에서 하나도 버릴 것 없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아이 캔 스피크]의 경우에는 큰 얼개를 끌고 가서 시나리오가 주고 싶은 감동을 관객들이 제대로 느낄 수 있게 연출해줄 수 있는 감독이 필요했고, 김현석 감독은 제 역할을 잘 수행했던 것이라고 정리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해야지 용팔이와 겪는 갈등을 후반부 초반에 흐지부지 얼버무려버리는 진행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구청 삼인방의 활약이 감초 역할에 머무는 것도 그렇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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