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택트(Arrival)] 드니 빌뇌브 감독




(영화의 줄거리 포함)



1. 인생의 이야기가 숙명(fate)으로


<컨택트(arrival)>는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와 전개가 다르다. 우선 영화에는, 소설에 없는 갈등과 해결이 있다. 그리고 언어의 영향(샤피어 워프 가설, 영화 대사에서 직접 언급, 소설에는 언급 없음)으로 목적론적 사고를 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지만, 루이즈가 미래를 기억(!)하는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인 물리학적 원칙-페르마의 최소원리-은 영화에서는 언급되지 않는다.

목적론적 사고 또는 정해진 미래를 현재와 함께 인지하는 상태(미래-기억)를, 페르마의 최소원리에서 유추해 내는 과정이 소설의 묘미 중 하나인데 애초부터 영화에서 기대하기는 어렵지 싶었다. 변분원리를 영화에서 주절주절 설명하다보면 흐름이 깨지고 관객들은 몰입하기가 어려울테니 말이다. 물리학 이야기가 빠진 덕분에 뱅크스 박사의 전공은 숫자 1/12을 발견하는 데 기여하는 장면에서만 쓰이게 된다. 때문에 물리학자를 등장시키는 당위성은 많이 약해졌다.

대신에 영화는 루이즈가 겪는 자신과 딸의 인생에 대한 미래-기억을 어떻게 끌어 안고 선택을 하게 되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래-기억 장면들은 감성적인 측면을 강조하기 위해 현재 장면과는 다른 분위기로 촬영되었는데, 테렌스 맬릭 감독의 최근작 <To the wonder>, < Tree of Life>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즉, 대사와 상황설명용 화면이 아니라 이미지와 음악들이 이야기를 끌고 간다. 그리고 영화를 위한 창작곡이 아니라 삽입곡으로 쓰인 <On the nature of daylight> (Max Richter작곡)의 역할이 무척 크다.

영화가 선택한 방향때문에 마지막 루이즈의 선택(또는 남편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소설과는 다른 느낌을 주게 된다. 우선 소설에서는 선택을 하는 행위가 정해진 미래 혹은 시공간의 궤적을 차분히 쫓아가는 이미지라면(3절 참조), 영화에서는 정해진 운명을 품어 안으면서 한층 성숙해지는 인간성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설에서는 여러 지식들이 한 데 모여 말이되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 지적 충만감을 얻을 수 있다면 영화에서는 자신의 운명을 알게되고 숙명을 감내하기로 결심한 주인공의 감정에 대한 애틋한 묘사가 기억에 남는다.


<On the nature of daylight>, Max Richter 작곡

2. 영화의 맺음부분에 대한 오해


많은 사람들이 호평했던 결말 부분을 나는 왜 밋밋하게 느꼈는지 씨네21 평론가의 글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소설을 보지않은 관객들은 처음 루이스의 회상 장면을 과거 기억 또는 환상이라고 알고 있고 마지막 갈등의 해결 후에야 처음 장면이 미래-기억 또는 일어날 일임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이전에 언급한 대로 딸을 잃게 예정된 삶을 받아들이는 루이즈의 선택에 대한 연민에 더해서, 회상으로 착각했던 영화 속 장면들을 다시 한 번 곱씹어 보는 지적 자극을 얻게 되는 것이다 (식스센스 감상과 비슷하다). 나는 참 오래전에 정성스럽게 스포일러를 읽고 영화를 본 셈이다 (브루스 윌리스가 차기작에서 귀신역할을 할거라는 소문을 접한 후 영화를 감상하는걸 상상해보자).

3. 소설에 묘사된 미래-기억에 대한 루이즈의 고찰


대부분의 관객들이 예정된 삶을 다시 선택한 그녀의 행동에 연민과 응원을 보내겠지만 소설에서 묘사된 루이즈의 선택은 의미가 많이 다르다. 책 구절을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그들은 미래를 창출해 내고, 연대기를 실연해 보이기 위해 행동한다." 203쪽

"이와 마찬가지로, 미래를 안다는 것과 자유의지는 양립할 수 없다. 나로 하여금 선택의 자유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내가 미래를 아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이와는 반대로 일단 내가 미래를 알면 나는 결코 그 미래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203~204쪽

다시 말해서, 미래-기억을 지니는 순간 자유의지는 의미를 잃어버린다. 책에서 묘사된 대로라면 양자역학의 입자-파동 관계같이 미래-기억과 자유의지는 일종의 상보적인 관계이기 때문이다.

루이즈의 선택에 대한 소설과 영화의 차이점은 딸의 운명에 대한 묘사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소설에서는 암벽등반 사고로, 영화에서는 불치병으로 목숨을 잃는다. 만약 영화의 설정을 받아들인다면 암벽등반 사고는 충분히 방지할 수 있는 사건이 되므로, 영화는 여타 시간여행물과 다르지 않게 된다. 그렇게해서는 관객이 감독이 의도한 끝장면의 여운-숙명을 받아들이는 루이즈에 대한 감정-을 납득하기가 힘들었을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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