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단위의 공포

지진이 왔던 저녁, 추가 지진을 걱정하며 동네공원으로 가는 피난길은 떠나는 차량들과 서성이는 주민들로 아파트 출구부터 붐볐더랬다. 가족들로 가득찬 공원은 소란스러웠지만 그것을 활기로 부르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런데 늦은 시간 공원을 메운 인파는 보기 힘든 광경임에도 낯설지가 않았다. 사실 공원에 도착해서 사람들이 배회하며 웅성이는 것을 본 순간 어렸을 때 온 동네가 정전됐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 쏟아져나온 주민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아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익숙한 집밖을 나와 한데를 배회하는 모습은 같지만 사람들이 품고있던 두 종류의 기다림은 성질이 사뭇 다르다.

과거의 지진들이 일상을 환기시키는 정도였다면 규모 6에 근접하는 지진은, 한국에서 평생을 살았을 대부분 주민들에게 삶의 터전이 꽤 낯설게 변할 수 있을 수 있구나, 하는 공포감을 주었을 것이다. 단단한 아파트 벽이 더이상 견고하지 않고, 자연의 심술에 뒤틀리고 주저앉을 수 있을 수도 있다니..... 특히 고층 아파트 주민들은, 좌우로 흔들리는 방안에서 우리 아파트 동이 뿌리채 뽑혀 긴 호를 그리며 넘어지는 중에 거실의 평평한 바닥이 빗면으로 변하는 상상을 하며 현기증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공원으로 피신해 배회하면서 아무런 조치도 소용이 없을 것 같은 무기력함을 곱씹은 분들도 꽤 되지 싶다.

개인이 겪는 범위를 벗어난 공동체단위의 공포감을 목격하면서 원시종교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본 것 같다. 꼬맹이적에 근처 하늘에서 터진 천둥번개를 무서워하며 방바닥에 엎드려 떨면서 얼른 평온한 상태로 돌아가길 기다린 적이 있었다. 그렇게 웅크리고 있을 때 머릿속으로 자연을 다스리는 무자비한 존재에 대한 본능적인 추측이 떠올랐고, 그것을 심리적으로 납득했더랬다. 두려움,회피,체념,초월적 존재에 대한 본능적 인지의 순서로 공동체 구성원들의 감정과 행동이 동기화되었을 때 비로소 기본적인 형태의 종교가 생겼을 듯 싶다.

어렸을 적 경험은 지금이야 코웃음치고 말 상황이지만 초월적 존재에 대한 본능적 인지는 종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생각하면 중요한 에피소드인 것 같다. 물론 본능적 인지에 대한 설명은 진화심리학적, 종교적 설명 같이 양 극단으로 갈라지겠지만 말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