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라이] 김삼력 감독
즉각 반응을 하게 되는 글들이나 영화를 보았을 때, 그런 매체들이 머리속에서 어지럽게 널려 있는 이미지들에게 질서를 주어서 화면 혹은 활자에 가두는 데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일련의 묘사 혹은 에피소드의 선택이 격한 감정을 일으키는 메카니즘의 한 부분임을 어렴풋이 깨닫고 어설프게 그것을 따라해보려는 욕망이 생기기도 했었다. 창작의 욕구라기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분해해 하나하나 명확히 파악해서 내 상태를 제대로 설명해주는 것들을 골라낼 수 있게 인도해 주는 방법론같은 것을 얻었다는 뿌듯함 같은 것이랄까. 가령 내 유년의 기억에서, 꿈처럼 장면과 감정이 뭉뚱거려져서 무엇을 이야기로 추려내야할지 도무지 모르겠던 차에 보게된 이명세 감독 영화 <첫사랑>에서 지붕에 버려진 종이 비행기 혹은 <M>에서 묘사된 미장원 앞길은, 감독이 자신의 기억에서 어떤 것을 추려내고 배치했는지를 나한테 설명해주고 있다. 언젠가부터 나는 영화에서 세상을 보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던 것 같다.
후배가 단편영화 찍는 것을 도와주고 조그만 시네마 테크에서 상영까지 마치게 된 상호는 이어서 상영된 한 단편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릴 정도로 큰 자극을 받게 된다. 아마 상호 역시 세상을 영화를 매개로 해서 보게 된 것이 아닐까. 그렇게 시작된 단편 영화일은 시작부터 고생이고 결국은 영화 내내 이어진다. 독립영화쪽 사람들의 생활모습에 대한 에피소드들과 명예보다는 좋은 작품을 위해 살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고민들이 흑백화면에서 조용히 묘사된다.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술자리에서 달래고 협박하며 영화 그만 찍으라라고 소리치는 후배에게 제대로 반발도 못할정도로 자신이 재능이 없음을 알면서도 끝까지 그쪽 판을 뜨지 못하는 상호의 모습과 오랜 기간동안 익히게된 전문적인 지식과 감독이라는 감투 덕에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또 다른 프로그램을 기대하는 모습, 이 두가지 장면은 내가 공부하면서 늘 생각해 오던 주제였기때문에 남 일 같지가 않았다. 사람들에게 수학 얘기를 해주기 보다는 수학 정리를 하나 증명하고 싶은 것이 이 바닥의 생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재능이 없음을 깨닫고 과감히 다른 분야로 떠나간 사람들을 보며 수학 공부를 묵묵히 해왔던 사람들과 상호의 삶이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는다. 행복하지도, 모범적이지도 않은 결말이지만 낯설지 않은 이야기속 상호와 동류의식을 가짐으로써 나를 이해해주는 영화와 만나게 된다.
한 단편영화의 감상이 상호를 영화판으로 이끌었다면 여자친구도 잃고 자신이 재능없음에 의기소침해진 상호를 다시 촬영장으로 이끄는 것은 디브디방에서 홀로 앉아 보던 영화의 매력들이다. "하늘에 닿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매일 팔짝 팔짝 뜀뛰기를 연습하는 개구리"처럼 상호는 영화를 앞으로 계속 해나가야 할 자신의 팔자로써 받아들인다.
별 감흥 없는 영화 초반부를 따라 가게 만들어 주던 것은 처음 시작 부분, 계단에 망연히 앉아 있는 상호에게 하나 둘 굴러 내려 오다 우수수 쏟아지던 수많은 구슬들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는 그 장면이 아마 상호가 단편 영화를 보고 나서 받았던 놀라움과 고양된 감수성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지는 그런 해석 보다 먼저 내 눈길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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