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 après-midi 어느 오후] 반젤리스 곡, 줄리안 로이드 웨버 연주
<Un après-midi> 반젤리스 곡, 줄리안 로이드 웨버 연주
반젤리스와 줄리안 로이드 웨버가 연주한 곡의 제목이다. 이 곡을 듣고 있으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희한하게도 아무런 날도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중학교 말 혹은 고등학교 초였던 것 같다. 초 여름날 창을 통해 비치는 햇볕으로 방 한구석이 환한 가운데 나는 프로야구 중계를 보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챙겨보고 있던 중계니 청룡의 경기를 중계해주고 있었을 테고 아마 상대편은 해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해태의 투수는 전형적인 잠수함인 방수원. 언더핸드 투수에다가 구속까지 느려, 별 일없이 공수를 주고 받는 경기를 보고 있으니 모든 것이 느릿느릿 진행됐다.
밖에서 왁자지껄 놀던 아이들도, 더위에 적막감이 도는 골목만을 남긴 채 사라져, 간혹 들려오는 소음이라고는, 가끔 하늘을 지나가는 제트기 소리 뿐이었다. 방 바닥을 비스듬히 비추는 햇볕이 만드는, 환하고 따듯한 사각형 옆에 누워 머리를 팔에 기댄 채, 먼 곳에서 나즈막하게 퍼지는 제트기 소리와 맥이 풀린 아나운서의 중계방송을 들으며, 천천히 홈플레이트로 기어가는 야구공을 쳐다 보고 있으니, 어느 순간 나른한 기운이 온 방안을 덮기 시작했고, 나는 꾸벅 꾸벅 졸기 시작했다. 허공에 떠다니는 것들이 내 위로 천천히 내려앉아, 나를 푹신한 이불로 덮어주던 느낌이랄 수 있는 그런 경험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속도를 늦추며 흘러가던 그 느낌을 다시 경험할 수 있을까? 반젤리스의 신디사이저와 줄리안 로이드 웨버의 첼로 소리가 어울리며, 라디오에서 흘러 나올 때 참 재밌더랬다. 아무 일도 없었던 나른한 '어느 오후'의 경험이, 정리할 수 없던 그 느낌이 곡안에 고스란히 패키지처럼 담겨있었으니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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