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우트] 김현석 감독
실망의 눈빛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참 고통스런 경험이다. 더 가슴 무너지는 일은, 그것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깨닫게 되는 것이다. 당사자가 어떻게 할 수도 없이 과거로 물러나 버린 그 상황은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도 주지 않은 채 그 당시 마땅히 취했어야 할 말과 행동들이 고스란히 부채의식으로 바뀌어 버린다.
고기집에서 과거의 기억을 되짚어 자신의 흉칙한 모습을 쳐다보는 세영의 당황스러운 눈빛을 결국은 깨닫게 된 호창의 모습은 너무나 안타까웠다. 안절부절 못 하며 몸이 아닌, 맘의 상처를 온전히 얼굴에 드러내 보이는 임창정의 연기는, 늘 그렇듯이 너무나 자연스러웠고, 감독이 담고자 했던 좌절감과 무기력함을 고스란히 영화를 보고 있는 내게 전해주었다.
<비트>에서 처음으로 임창정의 양아치 연기를 봤을 때, 그리고 모두들 그의 연기력을 칭찬할 때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건들거리는 저 모습에서 뭐 연기로 끌어낼 것이 있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출연했던 영화와 다른 한국영화들을 비교해 보면 캐릭터와 감정을 살리면서, 우리 옆의 형이나 동생같이 보이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영화의 부흥기는 어떤 면에서는, 관객의 정서를 온전히 살리면서 영화에서 살아 숨쉬는 임창정, 송강호같은 배우들의 출현과 함께 시작됐다는 생각이 든다.
김현석 감독은 나랑 비슷한 연배일거란 생각이 든다. 아마 맞을 것이다. <광식이 동생 광태>를 봤을 때 영화의 감수성이 우리 시절의 것이니 말이다. 영화에서 묘사된 야구와 광주의 기억을 함께 나누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야구에 대한 애정과 광주의 비극이 어디까지나 배경으로 머물러 있으면서,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덮어버리지 않는 것은 이 영화의 장점이 될 것이다.
프로파간다 영화 혹은 시대극을 찍는 것이 아니라면, 영화 자체가, 보여주고자 했던 소재에 묻혀 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예전에 어느 평론가가 장선우 감독의 영화 <꽃잎>에 대한 20자 평에서 그랬다. 언제까지 광주의 이야기가 강간의 이미지로 남을 것인가, 라고 말이다. 원작 소설이 원래 그런 것을 어떻게 하겠느냐마는, 게다가 영화는 개인의 아픔과 광주를 본격적으로 잇는데 성공했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 평이 불만이었지만, 그래도 심정은 이해가 됐다. 훌쩍 시간을 넘어 광주의 기억이 약해지고 있을 때 등장한 <스카우트>는 <화려한 휴가>의 노골적인 신파와는 다른, 정제된 감수성이 코미디 상황과 잘 어울려 있다.
영화에 몰입하게 만드는, 개인적으로 꼽게 되는 여러 장치들이 있는 데, 우선 감독의 전작들에서 꾸준히 볼 수 있는 살아있는 대사들이다. 오랜만에 세영과 다방에 앉아 나누게 되는 호창의 전두환에 대한 묘사라던가, 세영이 헤어지자며 꺼낸 "형"이라는 호칭을 처음 듣고 호창이 답하는 대사, "넌 왜 운동권 말투를 쓰냐" 등등. 이러한 대사들은 호창이 당시 시대 상황에서 떨어져 있는, 하지만 순박한 청년임을 잘 묘사해 준다.
영화를 즐겁게 보았던 다른 점은 드라마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전체적으로 잘 버무려진 코미디이다. 출연했던 이전의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하지만 그래도 태곤의 활약은 발군이었다. 사랑의 영감으로 단숨에 써 내려간 시 "비광"은 건달의 낭만과 비장함을 세영에게 전달하려는 태곤의 눈물겨운 노력이다. 또 하나 생각나는 것은 경찰서를 습격하기 위해 호창이 뒷문을 비추는 등을 돌을 던져서 깨는 장면이다. 태곤 패거리가 모두 "우~"하면서 감탄을 표현하는 장면은 묘하게 웃겼다.
<스카우트>에서 묘사된 그 때의 모습은 소품과 함께 대사들에서 잘 묘사되어있다. 어버이날 선물로 비비안 부라자 와 카네이션 생화를 마련하는 모습이라던지, 혹은 최루탄 냄새를 덜기 위해 치약을 손수건에 짜서 주는 모습 같은 것말이다.
영화는 세영의 회고로 끝나지만 그렇게 맘에 드는 맺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히 당했을 고문에 망가진 호창의 모습을 다시 보여주면서까지 둘의 만남을 보여주는 것도 영화의 전체 분위기와 맞지는 않아 보인다. 딱 맞는 결말을 생각할 수 없으니 영화의 끝도 괜찮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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