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008의 게시물 표시

[미스 리틀 선샤인(Little Miss Sunshine)] 조너선 데이턴, 밸러리 패리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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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마지막 장면에 아들 드웨인이 삼촌의 위로를 받으며 뱉은 말이 영화의 주제를 암시한다. "세상은 지랄같은 미인대회의 연속이에요. 초등학교, 고등학교.... 젠장맞을 항공학교...." 그 대회가 어떤 것인지 영화에서는 똑똑히 보여준다. 리틀 미스 선샤인 대회 참가자들의 치장들을, 도저히 꼬맹이들이 하는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그래서 올리브 아빠마저 턱을 떨어뜨리고 얼빠진 듯이 관람할 수밖에없는 장기자랑을 보고 있으면 뭐랄까 아이들의 대회가 아니라 단순히 다른 체급의 미스 선샤인을 뽑는 것처럼 보인다. 올리브는 패배자(Loser)가 되기에는 예쁘고 너무 어리다. 아마 성공지향적인 아빠의 생각에도 너무나 딱 맞춘 꼬맹이 미인 후보들이 거부감이 들었을게다. 사실 그가 그렇게 팔고 싶어했던 아홉단계 성공이론 역시 정형화된 성공의 모습을 전제로 했던 것 아니었을까? 이야기가 끝나면 가족들은 각자의 경험을 얻게 될 것이고 아빠 역시 자신의 성공 이론을 다시 검토해 볼것이다.. 영화를 쉽게 이해하게 만드는 카피 <콩가루 루저 가족 이야기>는 상투적이지만 진짜 딱 들어 맞는다. 하지만 여기서 실패란 무능력을 뜻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 이목을 끄는 화려함으로 치장된--이런 의미에서 정형화된--성공의 반대말이다. 너른 성공의 스펙트럼에서 단지 조그만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런 성공의 개념에 사람들이 주목하는 이유는 아마 미디어의 영향이 클 것이다. 정형화된 미인의 모습은 안성맞춤의 예가 될 것이다. 콩가루 가족을 거의 천마일을 달려가게 만든 것은 그들의 사랑스런 손녀이며 딸이고 조카이자 동생인 올리브이다. 마지막의 단체 춤 장면을 빼면 그들을 생기가 도는 가족으로 만드는 경험은 함께 고장난 차를 밀어 시동을 걸고 달리는 차를 좇아 아슬아슬하게 타는 스릴을 느꼈던 장면이다. 똥차를 끌고 왔다 갔다 하면서 후버 가족은 한가지 물음이 떠올랐을게다. 사람들이 주목하는 성공밖에도 우리들에게 만족을 주는 성공의 모습이 있으며 혹...

[매그놀리아(Magnolia)]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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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도 There will be blood를 보고 택한 영화였다. 이 감독에게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영화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폴 앤더슨 감독은 영화의 처음과 끝을 굉장히 인상깊게 찍는다. There will be blood의 인상적인 갱도와 볼링장 장면은 매그놀리아의 재기 넘치는 구성을 넘어서서 관객들이 감독의 원숙함을 생각하게 만든다. 사이드웨이와 마찬가지로 끝 장면의 여운이 많이 남았다. 긴 영화였고 중간에 따라가기 힘든 부분-폐암에 걸려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의 장면들-도 있었지만 공감을 하게 되는 에피소드도 많았다. 특히 소통의 어려움을 겪으며 사랑의 감정을 삭히고만 있는 인물들을 볼 때 많이 집중을 했다. 특히 짐과 클라우디아의 이야기는 인상깊다. 아픈 과거때문에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랑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믿는 여자가 마침내 그동안 마땅히 필요했던 위로와 사랑의 가능성을 동시에 얻게 된다는 이야기와 신파로 흐르지 않고 제대로 묘사된 감정들은 영화에서 얻을 수 있었던 귀중한 경험이었다. 영화 처음부터 삶에 끼어드는 우연에 대해 설명한다. 그러므로 영화는 많은 등장인물들을 우연을 통해서 엮게 될거란 짐작을 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 짐작이 영화 초반의 힌트에 얽매여서 대개 이름 사이의 연관성, 너른 시공간에서 교차하게 되는 희박한 확률등등... 이런 것들을 상상하게 만든다. 영화에서는 뜬금없이 하늘에서 사람 머리통만한 개구리들이 수없이 떨어지면서 의미없이 지나쳤을 인물들을 만나게 한다. 시한부 인생의 퀴즈 쇼 진행자의 자살을 방해하면서 일종의 응징의 성격을 보여주고, 사랑에 대한 희망을 잃은 두 사람을 만나게 해 서로에게 필요한 조언을 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준다. 엄마는 두려움에 떨고 있을 딸을 위해 차를 돌리고, 딸은 마침내 엄마와 만나게 된다. 퀴즈쇼를 중간에 뛰쳐나온 소년에게는 아마도 퀴즈문제로 알고 있었을 개구리비를 직접 겪게 되는 흔치않은 경험일 것이다.  모든 ...

[There will be blood]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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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혼돈과 창조 영화의 첫 장면은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2001 스페이스오디세이>에서 영화 시작전 검은 화면위로 흐르던 불협화음을 통해 창조 이전의 혼돈을 표현했던 전주곡을 떠오르게 한다. 대사없이 이어지는 처음 십몇분간의 장면은 주인공의 고난과 외로움을 너무나 절절히 전해주어서 주인공의 독백이 저음으로 시작될 때까지를 한 부분으로 떼어내도 괜찮았을터였다. 이 부분은 개인버전의 창조신화라고 할 수도 있을것 같다.  선데이힐에서 주인공 다니엘은 성공의 단초를 찾게 되지만 또한 남은 인생 동안 자신의 라이벌이 될 일라이를 만나게 된다. 성공적인 시추와 함께 종교지도자 일라이 역시 자신의 제삼계시 교회의 크기를 불려 나간다. 하지만 형과는 너무 다른 일라이를 다니엘은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 일라이 또한 약속했던 돈 그리고 시추기계의 축도 기회를 주지않는 다니엘이 못 마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의 대결은 우스꽝스러운 면이 있다. 기어코 돈 달라 조르러 갔다가 얻어 맞은 뺨을 세례의 핑계로 그대로 돌려줘 복수하는 일라이의 모습을 보니 이 영화는 두 사람의 권투대결이라고 했던 감독의 얘기가 떠오른다. 다니엘은 불의의 사고를 당해 죽은 시추공의 기도를 부탁하러 방문했던 교회에서 일라이가 행하는 치유의식을 본 후 의구심을 갖게 된다. 자신이 보는 일라이의 본래 모습을 왜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가? 인간 심성 아래에 묻힌 욕망을 까밝힘은 석유 시추의 모습으로 비유될 수 있다. 땅을 연구하면서 석유를 품은 곳을 찾는데 실패가 없었던 주인공은 본능적으로 확신한다. 저 놈을 시추하면 아래에 감춰져 있던 사악함이 터져 나올 것을.... 일라이가 선교를 위해 떠날 때 역에서 쳐다보면서 궁리했던 것이 그것아닐까?  영화에서 석유와 피는 비슷한 이미지를 공유한다. 마지막 장면의 피는 거의 검게 처리 되었다. 마치 석유가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동생이라고 믿었던 사기꾼을 죽인 후 파묻는 무덤은 석유로 가득차 있다. 석유가 세상 욕망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