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랜드 Wonderland]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



<Nine songs> <In this world> 두 편을 보면서 윈터바텀 감독은 영화를 참 다큐멘터리처럼 찍는구나 싶었다. 최근에 많이 볼 수 있는 페이크다큐 같다는 것이 아니라, 한 평론가(R.E.)의 말대로 어떻게 하면 나를 놀라게, 슬프게, 무섭게 할지를 영화에서 고민하기 보다는 주인공들의 상황을 담담하게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그랬다. 예를 들면, <In this world>에서는 아프간 난민캠프를 출발해 런던으로 밀입국 육로여행을 떠나는 소년의 고된 여정을 핸드헬드 카메라가 따라다니며 차분하게 묘사하고 있다.

여러 번 그랬지만 음악을 먼저 듣고 영화를 찾아 본 경우이다. 주인공 중 한 명인 몰리(Molly)의 주제곡을 우연히 듣고 감독이 윈터바텀임을 알았을 때 무척 의아해했다. 어떤 인물이기에 이렇게 씩씩하고 희망을 품은 느낌을 주는, 도드라지는 주제곡을 배정했을지, 감독의 차분한 스타일과 음악이 대비가 되어 만들어지는 영화 속 이야기가 무엇일지 참 궁금해졌다. 게다가 영화 제목이 원더랜드란다.

영화는 세 자매 데비(Debbie), 몰리(Molly), 나디아(Nadia), 부모 빌(Bill) 과 아이린(Eileen), 몰리의 남편 에디(Eddie), 데비의 아들 잭(Jack), 나디아를 짝사랑하는 프랭클린(Franklin)이 11월의 어느 주 금요일에서 월요일까지 겪는 이야기들을 모아놓았다. 나디아(Nadia)는 진정한 연인(!)을 찾기 위해 전화데이트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몰리는 아이가 태어나길 기다리고 있고, 에디는 최근 관둔 직장에 대해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데비는 이혼한 남편에게 아들을 보내 주말을 함께 보내도록 한다. 아이린은 밤새 짖는 개에 대해 이웃에게 항의해주지 않는 남편 빌이 원망스럽다. 프랭클린은 나디아가 일하는 식당에 가서는 변변한 이야기도 못 나누고 오곤 한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였다. 영화가 시작할 때 연인, 부부, 부자, 부녀 사이에 어색하면서 삐걱대는 관계를 보여주고 갈등을 거쳐 관계를 새로 맺거나 회복하면서 끝맺는다. 사랑의 의미에 대한 본격적인 고찰보다는 보통 사람들이 겪는 에피소드 모음 같아서 당연히 사랑의 낭만에 대한 기대감도, 애절한 감정을 묘사하는 장면도 없다.

대신에, 좋은 노래가 일상에서 한 순간의 소중한 감정을 붙잡아 묘사하듯이 영화도 주인공들이 겪는 감정들을 생생하게 잡아내곤 한다. 호감을 나눴던 데이트 상대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돌아가는 버스에 멍하니 앉은 채 눈물을 흘리던 나디아, 아이를 낳기 위해 극심한 고통을 감내하다 아이를 보고 환희를 느끼던 몰리, 가출한 아들이 어느 날 불쑥 전화를 해서 남긴 짧은 메시지를 자칫 지워질까 조심스럽게 반복해서 재생하던 빌의 표정. 서로 호감을 느끼면서 사소한 실수에 깔깔대며 환하게 웃던 몰리와 프랭클린의 뒷모습.

영화에서는 몰리가 세 자매 중 가장 유약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거기다가 몰리의 주제음악이 런던의 밤거리를 묘사하는 데 자주 쓰이니 영화음악에 낚여 엉뚱한 기대를 하면서 감상을 한 셈이다. 하지만 산통과 사투를 벌이는 몰리의 출산장면을 보면서 왜 그 음악에 몰리의 이름을 붙였는지 이해하게 됐다. 그렇게 태어난 앨리스(Alice)는 원더랜드의 새로운 주민 (Alice in wonderland)이 된다. 여기서 묘사된 원더랜드를 우리나라 버전으로 바꾸면, 유행가 ‘세상은 요지경 속이다’에서 요지경 정도가 되려나?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고 서로 교차한다는 점 그리고 얽힌 갈등들이 한 가지 사건(몰리의 출산)을 계기로 단숨에 해소된다는 점은 같은 해에 개봉한 P.T. 앤더슨 감독의 매그놀리아(Magnolias 1999)와 비슷하다. 게다가 지금 생각해 보니 두 영화 모두 주인공들이 환하게(!) 웃으면서 엔딩롤이 올라간다. 원더랜드의 주인공들은 평범하지만 매그놀리아에서는 온갖 직업에 종사하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점은 다른 부분이겠다. 두 영화 모두 매력적이고 끝맺음이 맘에 든다.


<Molly> 마이클 니만 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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