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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열쇠] 로저 젤라즈니

<전도서를 위한 장미>에 수록돼 있는 첫 번째 단편이다. 의도치 않게 신의 위치에 서게된 주인공이 들려주는 사색들이 참 자세하고 생생했다. 그의 고뇌들은 <신들의 사회>의 주인공인 샘의 것이라고 생각해도 될 만큼 닮아 있다. 장편이라 여러 사건과 페이지들에 파묻혀 있어 샘의 고뇌를 깊이 보지 못하고 지나쳤는데, 이 단편에는 그 정수가 담겨 있다. 천오백년에 걸쳐 강제 변환되는 행성을 홀로 관찰하는 주인공이 느끼는 고독은 아마도 하급생물에 대한 애정으로 발전하게 되는 씨앗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책을 덮고 나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끔씩 인간이 느끼는 근원모를 고독감은 영겁을 살아온 창조주가 품을 수 밖에 없는 한 속성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 하는...... 단편의 매력은 핵심으로 바로 들어가 그것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간결함에 있는 듯 하다. 그래서 단편에서 생각거리를 더 많이 얻게 되곤 한다. 

[내 이름은 콘래드] 로저 젤라즈니 저

Hard SF 장르에만 정을 주고 있던터라 로저 젤라즈니 소설 두 편, <콘래드>와 <프로스트와 베타>를 읽은 후 느끼는 감상이 여느 것과 다르지 않은 점을 깨닫고 나니 SF 장르에 대한 고민을 조금 하게 된다.  장엄함에 압도당하며 느끼는 카타르시스 경험과 크기에 집착하는 것이 본능의 한 부분이 아닐까 하는 고민이 만나면서 SF가 내게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또 나는 그것을 왜 보고 있을까 하는 궁금함이 든다.  소설 속에서 가끔씩 등장하는 콘래드가 살아온 긴 시간, 프로스트가 동경하던 대상으로 탈바꿈하려는 오랜 시도들, 그것들이 내가 처음으로 읽는 젤라즈니의 소설에서 얻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긴 시간을 묘사하는 구절들이 식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다 읽고나니 색다른 경험으로 남았다.  물론 <콘래드>는 주인공에게 맡겨진 지구라는 커다란 소재가 있지만 위에서 이야기한 스펙타클함은 그리스신화로 거슬러 올라가는 등장인물들의 개성및 신화와 맞닿아 있는 사건들로 부터 찾을 수 있다. <다윈의 라디오>에서 진화론의 역할을 그리스 신화가 차지했다고 해야 할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