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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의 중, 단편집의 제목이다. 제목과는 어울리지 않게 장르는 에스에프이다. 아마도 제목을 보고 흥미를 가졌을 독자들은 책의 내용이 자신의 기대와 사뭇 다른 것을 보고 처음에는 실망을 하겠지만 곧 만만치 않은 이야기거리를 보고 맘이 돌아설 것이다. 아무려나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책의 내용이 아니다. 원래의 영어 제목은 stories of your life, 책에 포함된 중편의 제목을 따왔다. 여기서 화자는 어머니이고 말하는 대상은 딸임을 염두에 두면 적당한 번역은 네 인생의 이야기(실제 중편에 쓰인 제목) 혹은 네 삶의 얘기들 정도일텐데 막상 형식적인 번역인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문학적인 감수성을 건드리는 면이 있다. 내가 처음 제목을 봤을 때도 그랬다. 내 인생의 이야기라니. 내가 겪은 경험들을 대표하는 어떤 원형들이 존재해서 그것들만을 모아놓은 책, 이런 분위기가 묻어있는 제목이었다. 그 책을 들춰보면 나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모든 기억들의 정수들이 보존되어 있을 터였다. 마치 '혈액형별 성격', 혹은 '오늘의 운세'의 문학적 버전이라고나 할까. 게다가 장편소설도 아니고 중, 단편집이니 더욱 그러한 기대를 갖게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머릿속에 장치를 심어 일생을 몽땅 기록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도 있었지만 그 기록마저도 편집을 담당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을 보면 우리의 삶중에는 의미있는 있는 때 혹은 경험이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가끔씩 떠오르는 장면들이 다른 것 보다 더 특별하게 보이는 이유를 댈 수 없는 나는 그런 것들을 가슴속에 잡아두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남다른 빛깔을 띄는 그런 경험들은 시간이 지나서야 깨닫게 되고 당시에는 그냥 휙 지나가 버린다. 정류장에 내린 후에도 버스 좌석 밑에 쓰러져 있는 우산을 떠올리지 못한 채 무언가 빠뜨린듯한 허전함을 느끼듯이 말이다.  아쉽게도 내 기억을 친절하게 정리...

신앙생활

신앙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 벌써 사오년 되었다. 기간이 확실치 않은 이유는 그 시작을 찾기 어렵게 자연스러운 친교 활동을 통해 종교를 접했기 때문이다. 나의 신앙이 미래의 불확실성과 현재의 고통을 통해 종교에 입문하게 된 이들의 것과 다른 점은 거기에서 찾을 수도 있겠다. 미국의 꽤 큰 한인 교회에서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고 자잘한 교회 행사에 참여하는 것들이 나의 신앙관에 대해 굳이 생각해 볼 거리를 주지는 않았다. 단편적인 성경 혹은 기독교의 지식을 배울 뿐 왜 신앙을 가지려 하는지 의문을 제기한 적이 거의 없었다. 독일로 들고 들어 온 종교 철학에 관련 된 입문서를 읽은 후 나 자신의 신앙관을 정리해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까? 일생동안 내 안에 구축된 과학적인 세계관은 신앙과 어떻게 조화 시켜야 하는가, 하는 물음도 있었다.  우선 종교적 세계관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중의 하나인 종교적 경험 혹은 계시 체험 그런 것들이 나에겐 (아직까지는) 없다고 얘기할 수 있겠다. 믿음이란 그러한 경험들에 대한 자신의 응답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란 무엇일까, 라는 회의가 들었다. 많은 과학자들이 신의 존재에 대해 긍정의 답변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여기서 오해하기 쉬운 점은, 앞에서 언급된 신은 하나님과 같은 인격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범신론의 측면에서 볼 수 있는, 즉 과학적인 세계관을 구축하는 와중에 심리적으로 자연히 기울게 될 수 있는 자연 그 자체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고백하자면 내가 처음에 하나님에 대해 품었던 이미지는 모든 자연과 현상을 아우르며 법칙을 주관하시는 그런 존재, 즉 앞의 과학자의 이미지와 많이 다르지 않았다.  하나의 공동체에 참여해 사회 생활을 하는 것이 나 자신 삶의 발전에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종교적 헌신으로 서로를 위해 노력하는 공동체의 모습은 삶의 한 목표로써 추구할 만한 이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