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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름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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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전작인 <별의 목소리>와 <초속 5cm>에서는 두 남녀가 근원을 알 수 없는 애절함을 간직한 채 서로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상대방을 애타게 찾기만 하다가 아련함을 간직한 채 깨어나던 백일몽이 생각난다. 감독은 그러한 감성을 풍부한 빛 묘사를 통해 보여주었더랬다. 섬세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만이 잡아낼 수 있는 세밀한 감정표현까지 말이다. 비슷한 느낌을 신경숙의 초기작들을 읽으면서 느꼈더랬다. 가령, 벙어리 형제 이야기인 <새야 새야>에서 주인공이 '살아가는 것을 슬퍼하는' 감수성을 어떻게 산골에 살면서 얻게 됐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단지, 사랑하는 여인을 지키고 싶은 애절한 마음을 형제간에 주고받는 수화를 통해 조용하지만 절절하게 보여준다. 신경숙의 초기작들이 감수성 넘치는 독백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는 비판이 과거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도 감독의 전작들에도 비슷한 딱지가 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너의 이름은>은 이 부분, 즉 감수성이 영화의 주된 이야기가 돼버리는 상황을 벗어나려는 감독의 고민이 들어간 작품인 듯 싶다. 남여 주인공의 이야기를 엇갈려 진행시키다 혜성 낙하 장면까지 비선형적인 시간으로 장면을 배치하면서 전작에서 느끼기 힘든 이야기의 힘을 비로소 보여주게 되고, 감독이 늘 담고싶었던 애절함을 이야기에 제대로 녹여내는 데 성공하였다. 두 사람을 엮어주는 "무스비" 설정은 여전히 정이 안가지만 영화 감상에 크게 방해를 하지는 않았다. <초속 5cm>에서 두 연인이 서로를 그리워하지만 결국 만나지는 못한 마지막 장면들은 안타까움을 안겨주지만, <너의 이름은>에서는 이 망각의 벽을 허물면서 끝을 맺는다. 흔히 반복되는 뻔한 운명적 만남 이야기는 이정도로 어마어마한 사연을 붙여줘야 매력적이 된다.

[아이 캔 스피크(I Can Speak)] 김현석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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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전작들(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광식이 동생, 광태, 스카우트 , 시라노 연애 조작단)을 떠올려 보면 앞 부분은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적절한 유머를 섞어가며 설명하고, 후반부에 영화의 큰 주제를 배치했던 걸로 기억한다. 에스에프 장르로 잠깐 외도한 것을 제외하면 다루는 소재와 주제가 다름에도 꽤 비슷한 형식으로 영화가 진행된다. 여느 상업영화라고 다를게 없겠지만, 김현석 감독은 캐릭터마다 신선한 유머들을 입혀주고 감독의 묘사에 수긍하도록 연출을 하는 부분이 큰 차이점이겠다. [아이 캔 스피크]는 전작들보다 많이 차분했다. [스카우트]에서 봤던 몸 개그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영화의 전반부는 인물 간에 주고받는 대화를 보여주며 흘러간다. 때문에 전반부는 감독의 전작과 비교하면 굉장히 정적이다. 자칫하면 시트콤 수준에 머무를 수도 있었는데 팔천 건의 민원 폭탄을 퍼부어댄 옥분 할머니의 기행, 영화 첫 장면과 재개발 이슈를 엮으면서 관객들의 궁금증을 영화 중반까지 잘 붙들어 둔다. 자칫하면 지루해질텐데 왜 이렇게 영화가 차분했을까, 하는 궁금증은 영화 중반에 옥분 할머니의 사연이 밝혀지면서 풀리게 된다. 까불거리는 연출이 도저히 후반부와 어울리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절제를 하느라 감독이 꽤 고심했을 듯 싶다. 옥분 할머니의 사연은 영화 홍보 기사에 많이 알려진 듯 한데 관람전에 정보를 찾아볼 기회가 없던 터라 영화에서 관객들이 주인공의 과거를 깨닫게 되는 순간에 격한 연민을 느끼게 됐다. 호들갑 떨지 않고 차분하게 연출했지만 감정의 폭은 크다. (영화 줄거리 포함) 옥분 할머니가 과거에 겪은 일을 주변에 알릴 결심을 하게 되면서 영화 후반부는 수십 년 시간대와 한국 밖을 벗어나는 공간으로 확장된다.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고통을 간직한 한 소시민의 이야기는 [스카우트]에서 이미 다루었지만 광주민주화항쟁과 위안부에 엮인 범죄 관련자의 국적만큼이나, 두 영화가 개인의 비극을 다루는 방식이 다르다. 관련자 단죄 및 관련 법 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