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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Interstellar)]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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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줄거리 없음) 고도로 발전된 과학과 마법은 구분할 수 없다지만,  현실에는 없는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에스에프 또는 공상과학물은 분명하게 판타지와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로저 젤라즈니, 테드 창의 소설을 읽고 난 뒤에는 그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험을 하게 되지만 인터스텔라와 반지의 제왕 정도는 비교할 만 하다. 매끈한 금속, 광활한 우주 공간  같은 에스에프의 소재, 주제, 배경등이 중간계의 호빗, 가죽옷, 화강암 덩어리, 휘황찬란한 마법 보다 현실감있다고 느끼는 점, 즉 구현가능, 도달가능하다는 믿음도 매력의 한 요소일 수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점은, 그동안 과학이 누려온 헤게모니밑에 깔려있는 낭만, 원초적 호기심이 탐험가들이 갖고 있던 것과 닿아 있다는 것이다. 탐험가들이 비일상적인 욕망으로 현실의 지도를 넓혀갔다면, 과학자들은 신에 대한 동경, 지식에 대한 욕구를 바탕으로 우주의 플라톤적 모델을 구축함으로써 진리 세계를 넓혀 갔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진리세계의 확장, 즉 세상을 설명하는 방정식은 비로소 탐험가들이 우주를 대상으로 삼을 수 있게 해주었다.  이 부분에서 에스에프는 판타지와 다른 매력을 가지게 된다. 판타지 세계의 이야기가 현실의 매력적인 변주에 머무른다면 시공간의 크기와 기묘함은 방정식 속에 갖힌 채 이야기로 숙성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선험적일 수 없는 특수, 일반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은 발견 이전의 어떤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이야기이다.  (영화 줄거리 아주 조금) 많은 사람들이 인터스텔라를 에스에프를 가장한 가족영화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 반대이다. 가족을 위해 탐험을 떠나지만 결국은 탐험만이 주인공의 삶이 되어버리는 이야기.  굉장히 익숙한 이야기이다. 예를 들어 허트로커에서 폭탄처리부대의 마약같은 일상을 탐험과 바꿔치기 하면, 인터스텔라와 큰 이야기구조가 같아진다.  하지만 ...

[봄밤] 권혁웅 작

봄밤 전봇대에 윗옷 걸어두고 발치에 양말 벗어두고 천변 벤치에 누워 코를 고는 취객 현세와 통하는 스위치를 화끈하게 내려버린 저 캄캄함 혹은 편안함 그는 자신을 마셔버린 거다 무슨 맛이었을까? 아니 그는 자신을 저기에 토해놓은 거다 이번엔 무슨 맛이었을까? 먹고 마시고 토하는 동안 그는 그냥 긴 관(管)이다 그가 전 생애를 걸고 이쪽저쪽으로 몰려다니는 동안 침대와 옷걸이를 들고 집이 그를 마중 나왔다 지갑은 누군가 가져간 지 오래, 현세로 돌아갈 패스포트를 잃어버렸으므로 그는 편안한 수평이 되어 있다 다시 직립인간이 되지는 않겠다는 듯이 부장 앞에서 목이 굽은 인간으로 다시 진화하지 않겠다는 듯이 봄밤이 거느린 슬하, 어리둥절한 꽃잎 하나가 그를 덮는다 이불처럼 부의봉투처럼 "현세와 통하는 스위치를 화끈하게 내려버린...."., "침대와 옷걸이를 들고 집이 그를 마중나왔다...." 같이 전반부는 발랄하고 재기넘치는 관찰들이 넘친다. 이정도 읽고 말면 요즘 주목받는 하상욱표 시(?)의 프로 버전이라고 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하지만 시의 마지막 네 절은 봄 밤의 기운과 취객을 바라보는 시인의 관찰이 어우러져, 앞부분의 장난기 어린 감성에서 "어리둥절"해 보일정도로 황급히 뒷 부분 봄 밤의 처연함으로 바뀐다. 나같은 독자는 '허허'하면서 이내 봄 밤의 기운을 취객에 대한 연민으로 바꾸어 느끼게 된다. 몇몇 시를 읽을 때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이야기 얼개를 유지한 채 이런 논리, 감성의 도약을 하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