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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픽 림]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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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전에 덕후들의 피를 끓게한다는 퍼시픽 림을 감상 했더랬다. 왕십리 IMAX 3D로 볼 계획은 전혀 없었는데 청주 작은 극장보다는 아무래도 더 큰 데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두 배 넘는 비용을 냉큼 결제해버렸다.  엄청나게 큰 쇳덩이가 움직이는 박력을, 감독이 보여주고 싶은 대로 감정이입해서 보고 느끼니 인터넷 글들에 넘쳐나는 남자의 낭만에 대한 찬사, 또는 덕후들의 감격에 찬 감상들이 빈 말이 아니더라. 하지만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감상평들이 꽤 엇갈리는 것을 보면 영화 감상을 위해 장면 곳곳에 박혀있는 세세한 묘사들, 가령 예거들의 육중한 움직임, 철갑 위로 흐르는 빗물 등등에, 감정이입이 필요한 것이 맞는 듯하다. 어린 시절에 열광했던 만화들과 일본 특촬물들을 지금 감상한다면 같은 수준의 감흥을 느끼긴 어려울 듯 싶다. 그렇지만 퍼시픽 림에서 감독이 강조하고픈 그 효과들을 곱씹어 보면서 예전을 돌아보니 어릴 적 입을 벌린 채 넋을 놓고 보던 장면들 역시 나름대로 여러 효과를 동원해 거대 로봇과 일상 사이를 대비시켜 주었다.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그런 가짜 경험들을 강화시켜 주는 장치들은 각 시대마다 있었다. 마징가나 로보트 태권브이 같은 애니메이션이 거대 로봇과 인간의 대비라는 소재를 가능하게 만들었다면, 특촬물은 건물과 괴수등을 묘사한 세밀함을 통해 가짜 상상력에 대한 갈망을 풀 수 있었다.  조그만 소리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스피커 매니아처럼, 덕후들은 또는 나는 가짜 상상력을 이전에 없던 세부 묘사로 채워줄 사람을 환영한다. 이 낭만을 구체화 하려는 욕망은 실제 과학 기술을 통해 거대로봇, 또는 한 발 양보해서 이족보행 로봇의 개발이 되어야지만 끝날 듯 하다. 따지고 보면 과학기술이, 동화에서 소원을 이뤄주던 마법을 대체한 지도 꽤 오래되지 않았나 싶다. 불행히도 거대 로봇 구현은 물리법칙이라는 장벽에 막혀 몇 세대안에는 볼 수 없겠지만 현실도피, 낭만, 숭고함에 대한 갈구 등 동기가 무엇이든 상관...

[열세 살 수아] 김희정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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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는 아빠가 죽은 후, 방황하며 말수가 적고 공상을 많이하는 초등학생이다. 사소한 오해때문에 지금 엄마는 키워준 분이고 낳아준 이는 유명가수인 윤설영이라고 믿고 있다. 학교를 땡땡이친 것을 걸려 엄마에게 심한 꾸지람을 듣고 수아는 마침내 진짜 엄마를 찾으러 나선다.  EBS에서 오랜만에 끝맺음이 맘에 드는 영화를 봤더랬다. 2007년에 개봉한 영화를 이제야 알아 보게된 이유는 아마도, 달콤한 청소년용 멜로물이라는 선입견 하나, 그리고 한국영화 홍수 속에서 재미있는 것을 찾으려 발품을 파는 노력도 시큰둥해지던 마음, 그런 것들때문에 개봉당시에 눈길을 주지 않았던 탓일게다. 꿈 속 푸근한 날 넓게 펼쳐진 "초록들"을 배회하다 죽은 아빠를 마주하게 되고 망설임끝에 마침내 맘속에서 떠나 보낸 뒤, 애절한 감정을 지닌 채 눈을 뜨는 수아의 모습은, 예전에 겪었던 감정들을 상기시켜 주어서 맘에 들었던 영화속 여러 장면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1990년 초까지가 문어체투의 대사와 후시녹음된 소리에 좀처럼 감정이입을 할 수 없었던, 영화 감상이 설익은 밥 먹는 것 같았던 "방화"의 시대였다면, 언제부터인지 잘 쓰인 소설처럼, 잘 뽑힌 시처럼, 가요처럼 한국영화가 우리 얘기들을 맛깔나게 기록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시절 어리버리한 모습에 대한 생생한 묘사에 더해,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겹겹이 쌓여가는 회한을 정리해주는 귀중한 경험때문에  "건축학 개론"을 좋아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국영화에 대한 애정도 그렇게 생겨난 듯 싶다. 영 젬병이라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웠던 감정을 감수성 풍부한 감독들이 잡아내 보여주니 얼마나 고마운지......마치 보물같은 그런 장면들을 우연히 찾는 경험을 하고나면, 쏟아져 나오는 한국영화에 대한 정보들을 이곳저곳 들춰보게 만드는 수고를 마다 않게 된다. <프리지아> 자우림 곡, 노래 그리운 꽃말을 가진 꽃들이 소복이 초록 들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