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되다(Redacted)]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
클로버 필드가 캠코더 동영상으로 괴물의 습격을 생생하게 보여주려는 시도 였다면 이 영화 <편집되다>는 여러 영상물을 짜깁기한 것처럼 보여주고 있다. 한 병사의 영상일기, 프랑스 제작자의 다큐멘터리, 이라크와 EU의 뉴스 방송화면, Security Video, 인터넷에 뜬 동영상 등등..... HD카메라가 보여주는 영상은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하고 땡볕에서 경계근무 서는 병사들 얼굴에 흐르는 땀마저 깔끔하게 보여준다. 이렇게 화면이 밝고 깔끔하게 나오는 영화가 뭐가 있었더라? '편집'처럼 본격전인 장편은 아니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찾는대로 여기에다 올려야겠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영화는 현장감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경계근무를 서는 장면은 이라크의 불안한 치안을 보고 들은 것과 겹쳐서 은근히 스트레스까지 받게되는 긴장감을 묘사한다. 특히 저격수운운하는 나레이션에서는 더욱더 말이다. 결국은 아이를 낳으러 서두르던 임신부가 탄 자동차에 기관포 세례를 퍼붓게 되는 상황을 보게 된다. 온전한 몸으로 돌아가자고 부하들에게 역설하던 하사가 부비트랩을 밟아 자빠지는 모습은 다른 상업영화에서 보던 비장함과 슬픔이 아니라 얼떨떨함을 준다. 저게 어떻게 된 일이야, 하고 말이다.
경계근무 장면은 프랑스 다큐멘터리를 가져온 척 하고 있는데 평온한(?) 주변상황과는 대조적으로 헨델의 '사라방드'가 배경음악으로 무언가 처절함을 강조하고 있었다. 전하려고 했던 감수성은 충분히 공감하고 했지만 뭔가 생뚱맞다는 생각도 있었는데 프랑스의 다큐멘터리 형식이니 약간은 감정의 과잉도-내가 보기에는-괜찮은 듯 싶다.
주변 피 흘리는 동료와 이라크 주민들의 시체의 모습이 뇌리에 낙인 찍힌 채 그대로 평생을 살아야 하는 데 무슨 전쟁영웅이냐며 흐느끼는 병사의 고백과 그 설움이 미소와 함께 찍힌 마지막 장면은 신문에서 매일 보는 이라크의 짧은 소식이 아니라 깊이 간직해야 될 이미지였다. 영화가 끝난 후 실제 이라크 피해자들의 사진들을 볼 수 있는데 광주 항쟁의 피해자랑 많이 다르지 않았다. 마지막 영화의 주된 이야기인 강간 사건의 피해자의 모습인 듯한 사진이 나오는데 초현실적인 분위기때문에 사진 처럼 보이지 않았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봤던 고통에 사로잡힌 채 죽어 누워있던 그림을 보는 것 같달까..... 사진 속에서 그녀는 눈은 뜨고 있지만 눈동자는 보이지 않고 하늘을 향한 채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사회의 부조리를 보여주는 비슷한 영화들을 보고나면 대개 피해자에 대한 연민도 들고 아직도 고쳐지지 않는 부조리들이 영화에서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라면 많은 생각거리를 떠안게 된다. 영화의 감상 목적이 갈등 해소 후의 카타르시스라면 이런 종류의 고발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은 두 종류가 될 듯 하다. 첫 번째는 부조리가 말끔하게 해소되는 것이다. <미시시피 버닝>이 예가 될 수 있을 듯 하다. 지방유지로 구성된 미국남부지방의 KKK를 힘들게 소탕하는 FBI얘기는 시원했다. 영화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는 흑인들에 대한 차별은, 주체가 지방의 권력자들이었기 때문에 없애기 힘들었지만 그런만큼 FBI가 마지막에 단호한 조치를 취했을 때 우리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떤 것도 해결되지 못한 <편집>에서도 물론 카타르시스가 있다, 적어도 나 개인적으로는..... 전쟁 얘기 해달라고 조르는 친구들에게 울먹이면서 이라크의 참혹한 모습을 설명해줄 때 나는 주인공에게 공감했다. 머릿속에 박혀 있는 슬픈 이미지들을 울먹이며 설명한 어릴 때의 기억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항변을 못하고 머릿속의 고통을 안은 채 고향으로 돌아와 귀향 축하자리에 참석했을 때, 주인공은 얘깃거리를 풀어놓으라는 친구들의 재촉에 비로서 그를 힘들게 한 기억을 꺼내 보여줄 기회를 갖게 된다. 머릿속의 처절한 이미지들때문에 주인공이과 나는 답답한 긴장감을 안고 있었고 마침내 주인공의 고백과 함께 해방되는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에게 연민을 갖고 함께 눈물을 아무리 흘려도, 그리고 영화의 배경 상황에 대해 아무리 욕을 하여도, 제 삼자의 입장에서는 공허한 감상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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