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 권혁웅 작
봄밤 전봇대에 윗옷 걸어두고 발치에 양말 벗어두고 천변 벤치에 누워 코를 고는 취객 현세와 통하는 스위치를 화끈하게 내려버린 저 캄캄함 혹은 편안함 그는 자신을 마셔버린 거다 무슨 맛이었을까? 아니 그는 자신을 저기에 토해놓은 거다 이번엔 무슨 맛이었을까? 먹고 마시고 토하는 동안 그는 그냥 긴 관(管)이다 그가 전 생애를 걸고 이쪽저쪽으로 몰려다니는 동안 침대와 옷걸이를 들고 집이 그를 마중 나왔다 지갑은 누군가 가져간 지 오래, 현세로 돌아갈 패스포트를 잃어버렸으므로 그는 편안한 수평이 되어 있다 다시 직립인간이 되지는 않겠다는 듯이 부장 앞에서 목이 굽은 인간으로 다시 진화하지 않겠다는 듯이 봄밤이 거느린 슬하, 어리둥절한 꽃잎 하나가 그를 덮는다 이불처럼 부의봉투처럼 "현세와 통하는 스위치를 화끈하게 내려버린...."., "침대와 옷걸이를 들고 집이 그를 마중나왔다...." 같이 전반부는 발랄하고 재기넘치는 관찰들이 넘친다. 이정도 읽고 말면 요즘 주목받는 하상욱표 시(?)의 프로 버전이라고 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하지만 시의 마지막 네 절은 봄 밤의 기운과 취객을 바라보는 시인의 관찰이 어우러져, 앞부분의 장난기 어린 감성에서 "어리둥절"해 보일정도로 황급히 뒷 부분 봄 밤의 처연함으로 바뀐다. 나같은 독자는 '허허'하면서 이내 봄 밤의 기운을 취객에 대한 연민으로 바꾸어 느끼게 된다. 몇몇 시를 읽을 때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이야기 얼개를 유지한 채 이런 논리, 감성의 도약을 하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다.